• 최종편집 2024-02-16(금)
 

파주시는 2일 황희 선생 유적지에서 위대한 명재상, 청백리 방촌 황희 선생의 유덕을 추앙하고 가르침을 되새기고자 마련된 7회 방촌문화제를 김경일 파주시장을 비롯해 이성철 파주시의장, ·시의원,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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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방촌 황희선생 가르침 되새기고자 ‘제7회 방촌문화제’ 열려(사진제공=파주시청) / 화신뉴스

 

황희선생 유적지는 황희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낸 반구정과 방촌영당, 경모재, 양지대, 방촌 황희 기념관이 있어 선생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파주시의 명소다.

 

이번 방촌문화제는 기념식과 추모제향을 시작으로 황희선생 일대기 강좌 줄타기 공연 반구정 노을음악회 청백리 골든벨 등의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또한 탁본, 전통다도체험, 물로 쓰는 붓글씨 등의 참여 프로그램은 시민들에게 체험의 장을 제공해 더욱 풍성한 행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로 일컬어진 황희는 흔히 황희정승으로 불린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대로 평가받는 세종시대의 주역인 황희 선생. ‘세종 없는 황희가 없고 황희 없는 세종이 없다.’란 말처럼 위대한 성군과 훌륭한 재상이 하나가 되어 위대한 세종시대를 열었으니, 이는 역사의 귀감일 뿐 아니라 21세기 이 시대에도 교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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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방촌 황희선생 가르침 되새기고자 ‘제7회 방촌문화제’ 열려(사진제공=파주시청) / 화신뉴스

 

황희 선생은 1363(공민왕 12) 210일 개성 가조리에서 아버지는 강릉도호부사 황군서이고, 어머니는 감문위 호군 김우의 딸 용궁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방촌 황희의 본관은 장수이며, 장수 황씨의 시조는 신라 말에 시중 벼슬을 지낸 황경이며, 그의 부인은 경순왕의 장녀였다.

 

황희의 처음 이름은 수로였는데 희로 고쳤고, 자는 구부, 자호가 방촌이었다. 그가 처음 벼슬에 나아간 것은 14세 되던 1376(우왕 2)에 복안궁 녹사였다. 그는 부모의 강권에 따라 1383(우왕 9) 사마시에 합격하고, 2년 뒤 진사시에 합격, 1389(창왕 1) 문과에 급제, 1390(공양왕 2) 성균관 학관에 보직됨으로써 관직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그는 56년간의 관직생활을 하면서 24년간 재상으로 있었고, 그 가운데 18년동안 영의정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라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다. 이러한 풍부한 행정 경험으로 그는 오랜 동안 관직에 머무를 수 있었고, 임금의 절대적인 신임아래 국정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며, 3의정이 되어서는 백관을 지도해 길흉을 점치는 시귀와 같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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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방촌 황희선생 가르침 되새기고자 ‘제7회 방촌문화제’ 열려(사진제공=파주시청) / 화신뉴스

 

김경일 시장은 강직한 성품, 분명하고 정확한 통찰력, 강한 추진력과 확고한 결단력으로 국가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남긴 황희 선생의 정신과 발자취를 잊지 않을 것이라며, “평생을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했던 황희 선생을 본받아 시민들과 함께, 시민들이 바라는 미래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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